돈 다음의 잔고
미래를 보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모레의 잔고’를 누르지 않은 지 스물여드레가 지났다. 메리트페이 본사 간판은 내려갔고 유리문에는 금융 당국의 자산 보전 명령서가 붙었다.
강태진은 배임과 증거 인멸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은행은 인수를 철회했고 동결된 계좌에서는 첫 번째 미지급 급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준호는 본사 맞은편 오래된 상가 4층에 책상 세 개짜리 사무실을 얻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의뢰인이 올라올 때마다 낡은 계단이 먼저 울었다.
문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미지급 임금·퇴직금 흐름 분석’. 회사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준호의 통장에는 돌아온 퇴직금과 밀린 급여 8,700,000원이 남았다. 앱이 보여준 98억 옆에 두면 작은 숫자였다. 하지만 입금자 칸에는 처음으로 실제 회사 이름과 법원 사건 번호가 있었다.
한 달째 안 눌렀네요. 후회하지 않아요?
서린은 편의점 커피 두 잔과 오늘자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출입증은 새로 발급됐지만 끈은 반으로 잘렸던 옛것을 그대로 묶어 썼다.
모레를 봤으면 다시 큰돈을 만들 수 있었겠죠.
구천팔백사십만 원 단위로 말하던 사람이 이제는 대충 말하네요.
남의 내일을 당겨 만든 돈이면 숫자가 정확할수록 빚도 정확해집니다.
첫 의뢰인이 계단을 올라왔다. 박성민은 해진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메리트페이는 그의 횡령 혐의를 취소했지만 밀린 월급은 아직 절반만 돌아왔다.
미래 앱은 예상 기간을 바로 보여줄 수 있었다. 준호는 화면을 뒤집어 책상 위에 놓고 급여명세서부터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회사 계좌에서 빠진 날과 박 대리님 명세서 날짜가 하루 어긋납니다. 이 하루부터 찾겠습니다.
세 시간 뒤, 준호는 하청업체 명의로 넘어간 마지막 송금 건을 찾아냈다. 박성민이 서류에 서명할 때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서린의 기사는 그날 포털 첫 화면에 올랐다. 제목에는 준호의 이름도, 미래를 보는 앱도 없었다. 대신 ‘사라진 월급 317건, 같은 날 같은 계좌로 흘렀다’고 적혀 있었다.
기적을 빼니까 기사가 더 세졌어요. 누구나 검증할 수 있으니까.
준호는 한 달 동안 닫지 못한 앱을 열었다. ‘모레의 잔고’ 아래 삭제 버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삭제를 누르자 휴대전화가 한 번 꺼졌다. 다시 켜진 화면에는 평범한 은행 앱만 있었다. 잔고 8,708,420원. 출처가 모두 설명되는 돈이었다.
내일은 잔고가 아니라 장부에서 찾겠습니다.
밤 아홉 시, 박성민이 첫 분석 수수료 100,000원을 보냈다. 준호는 입금자를 확인하고도 한동안 화면을 닫지 못했다. 누군가에게서 사라진 돈이 아니라 되찾아 준 돈의 일부였다.
서린이 가장 싼 김밥 두 줄을 사 왔다. 둘이 늦은 저녁을 나누는 동안 사무실 문 아래로 두꺼운 서류 봉투가 밀려 들어왔다.
준호가 봉투를 집는 순간 삭제한 앱의 아이콘이 화면에 한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준호는 첫 수익으로 무엇을 할까?
준호의 휴대전화가 한 번 더 빛났다. 삭제한 앱이 남긴 마지막 문장. “다음 시즌 잔고: 신뢰할 수 없음.” — 시즌 1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