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주인
부자가 되는 법보다 빚을 돌려놓는 법이 어려웠다.

준호는 ‘한 사람이 감당한다’를 눌렀다. 확인 창 대신 317명에게 보낼 문자 초안이 나타났다.
화물 통로 밖에는 서린의 낡은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닫자마자 그녀는 저장 장치 세 개를 꺼냈다. 빨간 것은 금융 당국, 파란 것은 노동청, 검은 것은 편집국 변호사에게 보낼 사본이었다.
혼자 책임진다는 버튼, 취소해요.
나누면 피해자들 잔고가 다시 줄어듭니다.
빚을 나누자는 게 아니에요. 증거를 나누자는 거예요. 삼백열일곱 명이 각자 자기 급여명세서를 확인하면 태진은 전부 조작이라고 못 합니다.
준호는 문자 초안 아래에 원장 전체를 붙이지 않았다. 각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한 줄, 원본 검증값, 신고 접수 번호만 보냈다. 다른 피해자의 정보는 가렸다.
오전 여섯 시 이 분, 첫 답장이 왔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퇴사자는 마지막 달 급여 213만 원이 정확히 맞다고 했다. 그 뒤로 휴대전화가 쉴 틈 없이 울렸다.
누군가는 통장 화면을 보냈고 누군가는 사직서를 보냈다. 한 사람의 원장이 삼백열일곱 사람의 생활 기록으로 바뀌었다.
이제 파일 하나를 지워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전 여덟 시, 강태진은 예고 없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승합차의 작은 화면에서 그는 흰 셔츠에 푸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뒤에는 ‘메리트페이 긴급 보안 사고 발표’가 떠 있었다.
태진이 준호의 유령회사 등기 화면을 공개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터졌다. 화면 아래에는 국내 최대 은행과의 인수 계약이 오늘 오전 아홉 시 완료된다는 자막이 흘렀다.
매각 대금이 들어오면 피해 채권보다 은행 담보가 먼저 잡혀요. 한 시간 안에 동결시켜야 해요.
미래 잔고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침묵하면 9,804,000,000원. 공개하면 0원. 98억의 출처에는 메리트페이 매각 성공 보너스라고 적혀 있었다.
준호는 98억을 누르지 않았다. 0원 쪽 상세 내역을 열었다.
내 잔고가 아니라 결과를 보겠습니다.
서린이 생중계 참여 링크를 열었다. 준호는 카메라 앞에 자신의 신분증과 유령회사 계좌를 함께 놓았다. 숨기면 태진의 증거가 되고, 먼저 공개하면 조작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회사의 대표자는 접니다. 제가 만든 회사는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 계좌 전체와 원본 파일의 검증값을 함께 공개하겠습니다.
서린이 317명의 확인서와 박대리의 원격 접속 기록을 차례로 띄웠다. 기자회견장 뒤편이 소란스러워졌다. 은행 인수 담당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하며 밖으로 나갔다.
오전 여덟 시 사십칠 분, 매각 검토 중단 자막이 떴다. 태진의 표정이 처음으로 내일을 모르는 사람처럼 굳었다.
자정이 되자 -300,000,000원이 한 자리씩 지워졌다. 새 잔고는 0원. 그리고 앱의 마지막 탭이 천천히 열렸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공개할까?
자정, 마이너스 3억이 사라졌다. 새 잔고는 0원. 그리고 앱에 마지막 탭이 열렸다. “모레의 잔고를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