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1

내일의 입금

해고된 밤, 아직 오지 않은 돈이 찍혔다.

4분 · 현대판타지 · 직장인 능력물 · 오피스 복수극
한밤의 사무실에서 미래 잔고를 확인하는 금융 분석가와 취재 기자

해고되는 데는 삼 분이 걸렸다. 서준호가 회사 돈 187억 원의 행방을 묻는 데는 그보다 십 초가 덜 걸렸다.

인사팀장은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네 번 말했다. 노트북은 이미 회수됐고 출입증에는 붉은 불이 들어왔다. 준호에게 남은 건 해고 통지서와 종이 상자 하나뿐이었다.

준호

퇴직금 보류 사유가 내부 감사 협조입니까?

대답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재무팀 층의 모든 모니터가 동시에 꺼졌다.

밤 열한 시 사십칠 분. 메리트페이 본사 앞에는 비가 내렸다. 준호는 젖은 종이 상자를 무릎에 올리고 막차 도착 시간을 확인했다.

잔고 8,420원.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나면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가 끝이었다. 퇴직금 지급 예정일은 빈칸이었다.

은행 앱을 닫으려던 순간, 화면 아래에 없던 탭이 생겼다.

내일의 잔고 · 오전 09:00 · 18,708,420원

준호는 숫자를 세 번 읽었다. 천팔백칠십만 원. 오늘 확인한 사라진 정산액의 마지막 여섯 자리와 같았다.

준호

들어올 돈이 아니라, 입금될 수밖에 없는 돈인가.

새 탭에는 계좌번호도 입금자도 없었다. 대신 조건 한 줄이 깜박였다.

수령 조건 · 책상 아래 세 번째 나사를 풀 것

출입증은 정지됐다. 책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준호는 무심코 종이 상자 속 물건을 헤아렸다. 머그컵, 충전기, 손때 묻은 키보드.

키보드는 회사가 폐기 목록에 올린 구형 장비였다. 준호는 우산 끝으로 밑면의 세 번째 나사를 돌렸다.

나사 안쪽에서 손톱만 한 메모리 카드가 떨어졌다. 비에 젖기 전에 주워 든 카드에는 검은 유성펜으로 날짜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내일.

내부 정산 원장 · 삭제 예정 08:59

잔고가 들어오는 시각보다 정확히 일 분 빨랐다. 누군가는 준호가 원장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가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바꾸려는 순간 모르는 번호가 울렸다. 세 번 끊었는데도 다시 걸려 왔다.

서린

서준호 씨, 회사가 당신 이름으로 허위 합의금을 보냈어요. 내일 아홉 시에.

목소리는 낮고 빨랐다. 메리트페이를 여섯 달째 취재 중인 경제부 기자 차서린이었다.

준호

그 금액이 천팔백칠십만 원입니까?

통화 너머에서 키보드 소리가 멈췄다.

서린

그 숫자를 어떻게 알았죠? 아직 송금 파일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준호는 메모리 카드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세웠다. 미래의 돈, 내일 지워질 원장, 그리고 오늘 처음 통화한 기자. 셋 중 하나는 덫이었다.

당신의 선택

준호는 메모리 카드를 어떻게 할까?

NEXT SIGNAL

자정이 되자 내일의 잔고가 바뀌었다. 18,708,420원에서 0원으로. 그리고 메모 한 줄이 추가됐다. “기자에게 말하면 입금은 취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