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없는 잔고
첫 의뢰의 장부에는 존재하지 않은 야간근무 한 줄이 있었다.

새벽 세 시 십이 분, 닫힌 사무실 문 아래로 서류 봉투가 밀려 들어왔다. 봉투가 멈추기도 전에 준호의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
삭제한 앱의 아이콘은 없었다. 알림만 평범한 은행 앱 위에 붉은 줄로 남았다. 준호가 문을 열었을 때 계단에는 젖은 발자국 세 개뿐이었다.
봉투부터 사진 찍어요. 손대지 말고.
서린은 아래층에서 커피를 사 오다 발자국을 봤다. 그녀가 장갑을 끼고 봉투를 뒤집었다. 발신인 대신 폐업한 세림병원의 법인번호가 적혀 있었다.
장부 첫 장에는 오전 다섯 시까지 공개해 달라는 문장이 있었다. 법원이 병원의 마지막 계좌를 채권 목록에 넣는 시각이었다. 두 시간이 지나면 직원들의 야간수당은 담보 대출 뒤로 밀렸다.
원본 확인 없이 내보낼 수는 없어요. 제보자 연락처는요?
없습니다. 대신 틀린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준호는 합계가 아니라 날짜를 짚었다. 퇴직 간호사 오은채의 야간 근무가 폐업 다음 날에도 여덟 시간 잡혀 있었다. 그 한 줄을 빼면 총액은 21억 4천만 원이 아니라 21억 3천8백72만 원이었다.
우리에게 가짜 장부를 공개하게 만들려는 거네요.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복사된 종이 오른쪽 끝에 검은 세로줄이 반복됐고, 줄 아래에는 희미한 장비번호가 찍혀 있었다. SRM-B1-04. 봉투에 동봉된 병원 자산 목록의 지하 1층 복합기 번호와 같았다.
세림병원 지하 원무실 4번 복합기입니다. 거기서 출력한 원본이 따로 있어요.
휴대전화의 신뢰 잔고가 0명으로 바뀌었다. 준호가 병원 주소를 검색하자 다시 -1명이 됐다. 앱은 돈이 아니라 두 사람의 다음 행동을 재계산하고 있었다.
새벽 네 시 이 분, 둘은 폐쇄된 병원 지하에 도착했다. 전기는 끊겼지만 원무실 복합기 화면만 푸르게 켜져 있었다. 배출구에 걸린 종이는 아직 따뜻했다.
누군가 방금 여기 있었어요.
계단 쪽 방화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서린이 뒤쫓는 동안 준호는 복합기의 작업 기록을 열었다. 마지막 출력은 03:06, 사용자 이름은 차서린이었다.
서린 씨 계정이 복제됐습니다. 기사 시스템도 확인해요.
서린이 노트북을 펼쳤다. 로그인 기록에는 서울, 부산,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세림병원 지하가 동시에 찍혀 있었다. 오전 다섯 시 예약 기사 한 건도 새로 생겨 있었다.
발행을 취소하면 상대가 사라지고, 두면 준호 씨가 사기범이 돼요.
준호는 취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기사에 첨부된 장부 파일의 검증값을 복사해 봉투 속 파일과 맞췄다. 둘은 같았다. 상대가 가짜 한 줄을 심은 시각까지 증거로 남아 있었다.
기사를 지우지 말고 제목과 첨부 파일만 바꿉시다. 침입자가 만든 예약 기록 자체를 공개하는 겁니다.
신뢰 잔고가 -1명에서 1명으로 올라갔다. 입금자 대신 처음 보는 이름이 표시됐다. 오은채. 장부에 가짜 근무가 적힌 바로 그 간호사였다.
그 순간 복합기 아래에서 진동음이 났다. 테이프로 붙여 둔 휴대전화 한 대가 자동 통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예약 발행 전에 무엇을 먼저 지킬까?
오전 네 시 오십구 분, 예약 기사 제목이 저절로 한 번 더 바뀌었다. “차서린 기자가 서준호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