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2억
빚을 선택하자, 숨겨진 채권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호가 서버의 전원 케이블을 뽑는 순간 주차장 조명이 모두 꺼졌다. 냉각기 소리가 멎자 멀리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진동이 발바닥까지 전해졌다.
앱의 현금 잔고는 -200,000,000원. 실제 은행 계좌에는 여전히 8,420원이 있었지만 그 아래에 채무 예정표가 생겼다.
각 이름 옆에는 급여, 퇴직금, 성과급이 따로 적혀 있었다. 준호 명의의 유령회사가 받은 2억 원은 그들에게 지급됐어야 할 돈의 일부였다.
이 서버를 가져가고도 공개하지 못하면, 횡령 책임이 전부 내게 확정됩니다.
그럼 공개하면 돼요. 원본부터 복사해요.
서린이 서버에 휴대용 저장 장치를 연결했다. 예상 시간 12분 04초. 지하로 내려오는 보안 엘리베이터는 7분 뒤 도착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파일을 나눴다. 서린은 송금 원장과 이사회 녹취, 준호는 피해자 명단과 자동 합의서 규칙. 복사 막대가 31퍼센트에서 멈췄다.
암호가 바뀌었어요. 관리자 승인이 없으면 다음 파일로 못 넘어가요.
서버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낯선 커서가 움직였다. 채팅창에 이름이 나타났다. 박성민.
어디 있습니까? 회사가 찾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 문장이 한참 나오지 않았다. 화면 위로 커서가 떨렸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B4에서 B3으로 바뀌었다. 남은 시간 2분 46초. 복사율은 58퍼센트였다.
피해자 명단만 빼고 나가요. 나머지는 박성민 씨가 삭제 전에 외부로 보내면—
또 한 사람에게 책임을 몰아주면 태진이 한 일과 같아집니다.
준호는 앱의 마이너스 2억을 눌렀다. ‘상환 시점 연기’ 아래에 비용이 표시됐다. 자신의 미래 잔고 1억 원을 추가 담보로 걸면 백업 잠금이 15분 동안 해제된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확인을 눌렀다. 잔고가 -300,000,000원으로 내려갔다. 동시에 서버의 모든 폴더 자물쇠가 열렸다.
이 앱은 돈을 예측하는 게 아니네요.
책임질 사람을 고르는 겁니다.
복사율 100퍼센트. 준호는 박대리 계정의 원격 접속 기록까지 저장한 뒤 서버에서 케이블을 뽑았다.
화물 통로로 뛰어드는 두 사람 뒤에서 보안문이 닫혔다. 계단 첫 층을 내려갔을 때 앱이 처음으로 질문을 띄웠다.
가장 먼저 검증할 파일을 고른다면?
복사가 끝나자 앱이 처음으로 질문했다. “3억의 빚을 317명에게 나누겠습니까, 한 사람이 감당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