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4

제로섬의 내일

준호가 부자가 될수록 서린은 모든 것을 잃는다.

5분 · 현대판타지 · 직장인 능력물 · 오피스 복수극
한밤의 사무실에서 미래 잔고를 확인하는 금융 분석가와 취재 기자

잠긴 회의실에서 준호는 1억 원의 출처를 눌렀다. 숫자가 세 갈래로 찢어졌다. 차서린 명의 손해배상 4,200만 원, 전세 보증금 가압류 3,800만 원, 해고 합의금 2,000만 원.

서린의 내일에서 정확히 1억이 빠져 준호의 통장으로 들어오는 계산이었다. 휴대전화가 뜨거워질 때까지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준호

당신은 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청구서를 받을 사람만 바꿨군요.

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회의실 스피커에서 서린의 목소리가 갑자기 흘러나왔다. 송신기는 이미 감지됐지만 연결까지 끊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서린

준호 씨, 1억을 받아요. 실제 계좌 흐름이 생기면 태진의 개인회사를 역추적할 수 있어요.

준호

당신 집과 직장을 담보로요?

서린

기사 하나 막히는 것보다 삼백열일곱 명 원장이 사라지는 게 더 비싸요.

단호한 말 뒤로 종이를 구기는 소리가 났다. 서린도 두려웠다. 두려움을 숨긴 채 더 큰 손실부터 계산하고 있었다.

준호는 앱의 거래 상세를 위로 밀었다. 입금자와 시각 사이에 지금껏 숫자로만 보이던 작은 글자가 있었다. 표시 기준: 현금. 회사에서 리스크 화면을 만들 때도 기준 통화는 바꿀 수 있었다.

그는 ‘현금’을 길게 눌렀다. 화면 아래에서 네 개의 항목이 올라왔다.

잔고 기준 변경 · 현금 / 부채 / 신뢰 / 증거

태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먼저 사라졌다. 그가 테이블 아래 버튼을 다시 눌렀지만 준호는 이미 ‘증거’를 선택했다.

준호

우리가 볼 건 돈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직 못 지운 것들이죠.

잔고 숫자가 꺼졌다. 대신 확보 가능한 파일과 남은 시간이 줄마다 나타났다. 퇴직자 원장 사본, 합의금 자동 생성 규칙, 태진의 개인 서버 백업.

핵심 증거 · B2 주차장 17번 구역 · 매일 02:00 원격 백업

서린이 스피커 너머로 주소를 받아 적었다. 동시에 소방 비상 방송이 울렸다. 그녀가 건물 관리실에 익명 신고를 넣은 것이었다.

서린

문이 열리면 비상계단으로 내려와요. 엘리베이터는 보안팀이 잡고 있어요.

자석 잠금이 풀리는 순간 준호는 계약서 마지막 장을 찢어 주머니에 넣었다. 별첨에 적힌 개인회사 이름이 앱의 파일명과 같았다.

열아홉 시간 뒤, 새벽 한 시 오십칠 분. 준호와 서린은 B2 주차장 환기구 뒤에 몸을 숨겼다. 디젤 냄새와 서버 냉각기의 마른 바람이 섞여 나왔다.

17번 주차 면의 바닥선이 천천히 갈라지더니 차량 대신 검은 서버 랙이 올라왔다. 앱의 증거 잔고가 1에서 0으로 줄기 시작했다.

서린

백업까지 이 분. 저걸 빼면 끝나요.

준호가 서버 손잡이를 잡자 앱이 마지막 비용을 계산했다.

증거 확보 후 현금 잔고 · -200,000,000원
당신의 선택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어도 서버를 가져올까?

NEXT SIGNAL

새벽 한 시 오십구 분. 지하 주차장 17번 구역에서 서버 문이 열렸다. 안에는 준호 명의로 개설된 유령회사 장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