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의 제안
대표는 준호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전 여섯 시 십 분, 강태진 대표의 비서가 주소 하나를 보냈다. 본사 최고층 회의실. 방문증은 살아 있었고 서준호의 해고 기록은 사내망에서 사라져 있었다.
기사 송고까지 세 시간. 서린은 카페 유리문 앞을 막아섰다. 밤새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빗물이 말라 하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혼자 들어가라는 말은 혼자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에요.
내일 잔고가 바뀌었습니다. 정확히 100,708,420원.
들어가기 전보다 나오고 난 뒤가 구천이백만 원 비싸네요.
서린은 단추처럼 작은 송신기를 준호의 셔츠 안쪽에 붙였다. 녹음은 자신의 노트북과 편집국 서버에 동시에 저장되도록 해뒀다.
최고층 회의실은 불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유리창 아래로 출근 차량의 붉은 불빛이 줄을 만들었다. 강태진은 창가에 서서 그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긴 테이블 끝에는 1억 원짜리 자문 계약서와 새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전원을 켜지 않은 전화 화면에도 준호의 현재 잔고 8,420원이 떠 있었다.
제 계좌를 조회한 겁니까?
태진은 대답 대신 준호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준호는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 태진의 오른손 검지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새 휴대전화 뒷면에도 같은 위치가 녹아 있었다.
왜 당신 앱이 내 전화로 왔습니까?
태진은 미래 잔고를 처음 본 날 회사 계좌가 마이너스 36억이었다고 말했다. 잔고가 플러스로 바뀌는 선택만 골랐다. 적자를 피하면 협력사 대금이 밀렸고, 투자금을 당기면 직원 성과급이 사라졌다.
어디서 빠지는지 알면서도 계속 눌렀군요.
태진이 처음으로 준호를 보았다. 밤을 새운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오늘의 결과를 이미 확인한 사람처럼 편안했다.
그가 계약서 첫 장을 밀었다. 서명하면 미리보기 범위가 하루에서 일 년으로 늘어난다고 했다. 준호의 앱에 숫자가 솟았다.
98억 400만 원. 준호가 평생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아도 만들기 어려운 돈이었다. 숫자 아래에는 출처 대신 사람 모양 아이콘 하나가 깜박였다.
셔츠 안쪽 송신기가 짧게 두 번 진동했다. 서린이 보내는 중단 신호였다. 이어서 휴대전화로 사진 세 장이 도착했다.
회사 로비 바닥에 박대리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뒤로 새벽에 연락한 퇴사자 둘이 보안 요원에게 팔을 잡힌 채 서 있었다. 마지막 사진에는 서린의 편집국 출입증이 반으로 잘려 있었다.
계약서보다 먼저 돌려줄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회의실 문이 잠겼다. 태진은 테이블 아래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1억 계약서를 어떻게 이용할까?
태진이 문을 잠갔다. “네 잔고에 찍힌 1억, 내 돈이 아니야. 차서린 기자의 내일 값이지.”